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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림속광주]떠나는 사람들의 눈물이 있다-문흥동에서

웹지기     입력 18.09.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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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종씨 작 `문흥동에서·1’

 어떤 것이 밀고 들어오면 어떤 것은 사라진다. 그것이 세상의 원리이며 개발의 논리다. 상생의 배려는 사라진 지 오래다. 밀려나는 것들에게는 언제나 처연한 무게가 있고, 또 눈물이 있다. 점령군처럼 아파트가 들어올 때마다 자연마을들은 소리 없이 봇짐을 싼다. 개발은 폭력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새로운 부의 상징이다.

 박문종의 그림 `문흥동에서·1’은 떠남의 시간을 쓸쓸하게 증언한다. 1990년대 초반 문흥지구가 만들어졌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서 있던 그 땅은 정돈되면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밀어냈다. 포크레인 삽날이 마을을 부수고, 널브러진 잔해를 불도저가 밀어내면서 집들은 사라지고 깨끗하게 넓은 공터만 남았다. 재단된 그 땅에 정확한 규격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상가 밀집지역이 생겨났다.

 어느 날 문흥지구 다리 아래로 아낙이 보퉁이 하나를 머리에 이고 걷는다. 가깝게 한옥 지붕으로 묘사된 마을이 있다. 쓸쓸한 표정, 떠남의 풍경이 고스란하다. 교각은 도시적 삶의 무게고, 보퉁이는 떠나는 자의 무게다. 한지 위에 먹과 황톳물을 써서 그렸다. 연한 황토의 노란빛은 자연마을이 있던 자리를 감싸고 있다.

 “전라도에서 황토는 삶의 표정이고 남도의 정서다. 우연히 시도하게 됐다. 한지 위에 황톳물을 바르면서 매우 흥미롭게 느꼈다. 남겨진 땅과 떠나는 사람, 삶의 아픈 무게들을 그 황토 속에 잠재우고 싶었다.” 

 박문종의 고향은 무안이다. 어느 봄 못자리를 위해 모판에 흙을 담는 아버지에게서 황토의 이미지를 만났다. 작은 자루에 황토를 담아와 물에 풀고 한지에 스며들게 했다. 황토는 자연스럽게 퍼져 남도의 정서를 구현했다. 90년대 그의 작업은 황토가 한지 위에서 만들어낸 연한 노란빛 같은 그리움이었다.

 `문흥동에서·1’은 1992년에 그려졌다. 신혼살림을 풀었던 가난한 화실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 거처가 문흥지구에 있었고, 개발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마을을 부수고 아파트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됐다. 기계 굉음 속에서 그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픔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기억을 너무 빨리 잊는다. 지금도 문흥동에 가면 담양으로 통했던 옛 길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다만 사람들이 길의 소중함을 잊었을 뿐이다. 변화는 필연이지만 기억하는 일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의 몫이다.”

 이제 문흥지구에 황토의 이미지는 없다. 단단한 시멘트가 땅 위를 덮었다. 도시가 삼킨 것들, 그때 떠났던 사람들의 눈물은 어디에서 마르고 있을까. 삶의 무게는 조금 더 가벼워졌을까?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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